2022. SUMMER vol.150
ISSUE HEALTH COMMUNICATION
S 다이어리

서울의료원 직원들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내 옆의 히어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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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최석현 의료정보팀 정보처리사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산행동호회 회장을 맡은 후 처음 등산하는 날이 밝아 온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동호회 활동은 타이틀만 유지한 채로 흘러가던 중에 드디어 첫 등산모임으로 아침부터 저는 살짝 흥분한 상황이었습니다.

저까지 포함해 여섯 명의 조촐한 인원이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말수가 없는 편이지만 회장으로서 첫 산행에서 무슨 말이든 해야겠지 싶어서 넉살좋은 척 몇 마디 건네기도 했지만 산에 익숙하지 않은 노쇠한 팔다리가 초입부터 후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임에 처음 나오셨다는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제일 앞장서서 나가시는 겁니다. 여섯 명의 대장처럼 맨 앞에서 척척 길을 올라주시는 선생님이 순간 너무 고마웠습니다.

“병동 업무를 하다보면 체력이 정말 많이 필요하거든요. 저도 운동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어느 날 마지막 병실 앞에서 숨이 턱 막히는 거예요. 도저히 힘이 안 나오는데 이 병실을 어떻게 다 정리하고 저 환우 분들을 어떻게 감당하지 싶은 막막함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자신의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출근 전 매일 새벽 한 시간씩 집 뒷산을 오르신다는 선생님의 성실함과 근면에 마음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별로 높지 않은 산이었는데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깔딱 고개가 있었습니다. 깔딱 넘어가는 숨을 3번 지나고 나니 정상이 보였고 우린 그 자리에서 현수막을 꺼내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싸 가지고 간 김밥을 꺼내서 먹으며 모 팀장님의 귀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 조선의 마지막 궁녀들의 여생을 서울의료원에서 책임져줬다는 얘기였습니다.

김밥을 먹다가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조선의 마지막 궁녀요?”

궁녀라니…. 사극에서나 보던 궁녀를 우리 의료원에서 돌봤다니요. 어릴 때 애기상궁으로 들어가 평생을 궁에서 늙어 죽을 줄 알았던 그들이 해방이후 갑자기 바뀐 사회에서 시대의 부랑자가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서울시에서 따로 그 분들을 수용할 곳을 노원구에 지었고 그 일을 서울의료원이 맡았다고 합니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일, 그 단순한 일이 처음엔 굉장히 단조롭고 심심하게 여겼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일정 속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새삼스럽지만 내 옆의 귀한 인물들을 만나고 경험한 하루였습니다.

영웅이 꼭 거창한 일을 하고 세계의 평화를 지켜내는 이들이 아니더라고요. 내 옆의 직원들,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이라도 잘 해내기 위해 매 순간 애써 힘을 내주는 동료들이 숨겨진 이 세상의 진짜 히어로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랜 코로나 시국으로 사람의 숨소리가 무척이나 그리웠던 시점이었고 그 극한의 메마름 속에서 조금은 낯설지만 어색하게 첫 발을 디뎠던 산행은 정말 즐겁고 재밌었습니다.

사람의 인기척이 그리우신가요? 내 옆의 히어로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산행동호회로 오시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친절함과 간호의
공존에 대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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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윤유숙 병동간호2팀 간호사

직장에서 유독 친절함을 강조하는 곳이 있다. 서비스 업계, 여성이 많이 근무하는 곳, 사람들의 요구가 명확한 곳들을 추려보다 보면 병원이 떠오른다. 하지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친절함을 당연시 하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년차 간호사는 상태가 안 좋은 환자를 간호하면서도 환자나 보호자의 황당한 요구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신규 간호사는 발생하는 상황이나 요구에 맞게 대처하기란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환자의 중증도가 뒤섞인 공간에서 마냥 친절함을 원하는 것은 간호사의 심적 스트레스를 과중하게 만든다.

환자들은 개별적인 대우를 받기 원한다. 특히 자신의 요구가 중증도에 따라 후순위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의료인과 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되어 결국 그것이 가장 일선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투영이 된다.

물론 간호사의 친절함을 배제하거나 그 의미를 격하시킬 필요는 없다. 사람의 생명을 일선에서 지키는 간호사에게 무조건, 우선적으로 친절함을 강요하기보다 정확함과 민첩성을 펼쳐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후 환자의 심정에 공감하며 친절한 간호를 발휘하도록 사회적, 구조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이성적이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무조건 저자세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줄여나가야 한다. 이 같은 문제들에 대응하고자 병원에서는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피해 발생부터 사후관리까지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해결책으로 간호사가 겪는 모든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상처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을까?

대부분 내가 급여를 받는 생활터전에서 맡은 업무를 친절하게 수행한다.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자연스레 친절함은 따라온다. 하지만 환자 열 명의 중증도가 상이하며 상태변화를 수십 번씩 경험하는 간호사로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간호사에게 모든 환자를 개별적으로 대응하며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맡은 환자를 살뜰히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병원을 사직한 후배 간호사의 가슴 아픈 하소연이 떠오른다.

“선생님, 저 환자에게 석션할 시간조차 없어서 자괴감이 들어요. 왜 환자가 당연히 제공 받아야 할 루틴조차도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죄송한 마음만 드는 걸까요. 이건 제 잘못도 아닌데요….”

친절함과 공감이 밑바탕 되어 환자를 전인적으로 간호할 수 있는 일터를 꿈꿔본다.

[서울의료원 S 다이어리]는 직원들의 병원 업무와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는 페이지입니다. 장르와 주제 제한은 없습니다. 서울의료원 구성원들의 진솔한 이야기,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눠보고 싶은 생각들을 담아 홍보팀으로 보내주세요. 심사를 거쳐 당선되신 분들의 원고는 왕진가방 다음 호에 게재됩니다. 많은 직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원고제출: 서울의료원 홍보팀 seoulmcpr@daum.net / 문의: 02-2276-8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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