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SPRING vol.157
ISSUE HEALTH COMMUNICATION
해외 연수기

2022-2023년,
역사의 현장에서 영국을 체험하다

alt

글 _ 김종규 재활의학과 과장
진료분야 _ 척수손상 재활, 소아 재활, 근골격계 통증, 전기 진단, 암 재활

alt

2022년, 국가로부터 의사면허를 수여 받은 지 20년이 지났고, 서울의료원 재활의학과에서 근무한지도 10년차가 되는 해의 여름에 저는 영국 런던의 Royal National Orthopaedic Hospital (RNOH)에 1년간의 해외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의료기관, 해외 재활병원을 방문하기로 마음먹다

2022년, 국가로부터 의사면허를 수여 받은 지 20년이 지났고, 서울의료원 재활의학과에서 근무한지도 10년차가 되는 해의 여름에 저는 영국 런던의 Royal National Orthopaedic Hospital (RNOH)에 1년간의 해외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해외연수지를 찾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연구기관보다는 의료기관, 특히 해외의 재활병원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유명한 재활병원을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미국을 덮친 오미크론 형의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제가 연락했던 모든 재활병원에서 외부인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방문 제한 조치가 언제 풀릴 지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고, 상대적으로 통제가 덜 심하다고 알려졌던 영국의 재활병원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재활의학 영역에서, 특히 척수손상재활의학 영역에서 영국에는 Stoke Mandeville Hospital이라는 역사적인 병원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현대적인 의미의 척수 손상 재활이 처음 시작된 곳이고, 현재의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Stoke Mandeville 병원에 있는 국립척수손상재활센터로 연수를 준비하던 중, 센터장인 Dr. Allison Graham이 본인의 은퇴가 예정되어 있어 연수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곳을 안내해 주신 곳이 바로 RNOH였습니다. 영국에는 11개 국립 척수손상재활센터가 있는데, 그중 런던 지역을 담당하는 London Spinal Cord Injury Centre(LSCIC)가 RNOH에 설치되어 있어, 이곳에 연수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원 입구 정문
LSCIC 입구-척수손상센터 입구

영국 런던의 Royal National Orthopaedic Hospital, 설립 100주년이 되던 해

RNOH는 런던 북부 Stanmore에 위치하고 있는 정형외과 전문병원입니다.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3차병원으로서 University College London 의과대학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도착했던 2022년은 병원이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녀 중 한 명인 유지니 공주가 12세 때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은 병원으로 알려져 있고, 그 때의 인연으로 유지니 공주가 공식 후원자가 되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숲 속에 있는 병원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의사소통 방식을 배우다

LSCIC에는 4명의 재활의학과 전문의와 2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전담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50병상이 운영되어야 하지만, 간호사가 부족해서 현재는 40병상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별도로 있는 아동 병동에서 2병상을 소아척수손상재활 병상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재활병원에서 가장 많이 참석했던 시간은 다학제진료회의(Multi-disciplinary Team meeting, MDT)였습니다. 영국의 의료전달체계에서 3차 진료기관에 속하는 이곳에서 모든 환자에 대한 결정은 관련된 모든 의료진들(재활의학과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비뇨의학과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례관리자 등)이 모여서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척수손상 입원환자들에게 심리평가와 상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가 포함되어 있었고, 7명의 사례관리자가 모든 환자의 입원과 퇴원에 개입하여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개입을 하다 보니 의사 결정이 빨리빨리 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서 늘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는 저에게는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측면도 있었지만, 모든 직종의 치료진들이 환자의 모든 의학적인 진행 상황을 동시에 공유 받고, 의사결정과정에 모두가 다 참여해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도교수인 얀 가브론스키와 함께
100주년 기념 현수막
병원 안에 있는 UCL 연구소
송별회-왼쪽부터 베리티, 알렉스, 라미즈, 나, 샬럿, 얀

최신의료기술 도입의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하다

영국의 NHS 제도에서는 국가에서 허락된 의료 행위는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언제나 비용효과성을 따집니다. 그래서 별도의 비급여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신 의료 기술의 도입이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RNOH를 포함하여 제가 경험한 모든 NHS 상급 병원에서는 이러한 간극을 연구로 메꾸고 있었습니다. 아직 NHS에 등재되지 못한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많은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여기에 환자들을 포함시켜 실제적으로 최신 의료 기술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LSCIC에서도 별도의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여기에 많은 임상 과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RNOH의 직원이면서 동시에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교수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별도로 NHS 병원 내부에 별도의 Private clinic 병동을 설치해서 NHS가 아닌 사립 의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Horatio garden 병실에서 바로 정원으로 연결되는 구조
KBS에 잠깐 나온 화면
대관식 기념 왕관 조형물
대관식 의자 - 웨스트민스터 사원

척수손상 장애인을 위한 정원, 호레이시오 가든(Horatio’s Garden) 개관 행사 참여

처음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척수손상센터장인 Jan Gawronski로부터 바로 다음주에 호레이시오 가든(Horatio’s Garden) 개관 행사가 있으니 온 가족이 참석하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호레이시오 가든은 영국의 국립 척수손상센터마다 설치되는 척수손상 장애인을 위한 정원입니다. 호레이시오라는 학생이 척수손상센터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이들을 위한 정원을 만들어보고자 모금을 한 것이 그 시작이 되었습니다. 척수손상 장애인을 위한 재활의학 의사의 꿈을 가지고 있던 이 학생은 10대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만, 가족들이 그 뜻을 이어서 자선 재단을 설립하고, 영국의 척수손상센터마다 이러한 정원을 설계하고, 건축하고,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료원의 4층 정원도 훌륭하지만, 호레이시오 가든은 병원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선 재단이 직접 정원사를 고용해서 운영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었습니다. 사실 이 정원은 완공된 지 꽤 오랜 시간이 되었는데, 코로나-19로 개소식을 못 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개소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소식에 오신 손님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척수손상 장애인들과 함께, 모금을 위해 자전거로 국토 종단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역의 정치인이나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은 한국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마침 KBS에서 호레이시오 가든을 취재하러 와서 제가 안내도 해드릴 수 있었고, 방송에도 잠깐 얼굴을 비출 수 있었습니다.

영국 의료와 영국 문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가다

어느날 오후, 병원의 의사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물어봤더니 여왕이 위독하다는 뉴스가 나왔다고 모두들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말로 영국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셨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장례식 당일에는 병원과 학교도 모두 다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지내던 1년 동안 영국에서는 최초의 여성 총리가 선출되었고, 그 총리는 최단기간 총리로 기록을 남겼고, 최초의 아시아계 총리가 선출되었습니다. 여왕이 서거했고, 70년 만에 새 왕이 취임했으며, 70년 만에 대관식이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1년이었지만 영국 의료와 함께 정말로 많은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었습니다. 지면을 빌려 이러한 기회를 주신 서울의료원과 제가 없는 동안 재활의학센터를 지켜주신 동료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글을 맺습니다.

HOME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