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푸드, 콩나물 볶음
글 _ 황인철 산부인과 과장진료분야 _ 산전관리, 고위험임신, 정밀초음파
아프리카 흑인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던 음식
‘소울푸드(Soul Food)’, 듣기만 해도 감성적이며 나의 영혼을 깨울듯하지만, 사실 소울푸드의 기원을 보면 참 슬픈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소울푸드의 기원은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서아프리카의 식문화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 무렵에는 노예로 부리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활발히 수입해 왔는데, 고된 노동 후에 그들의 심신을 달래주던 아프리카의 고향 음식을 일컫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프리카의 식재료와 당시 미국의 식문화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독특하면서도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양의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거나 동남아시아의 안남미로 밥을 지어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비록 고향에서 먹던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그 맛은 아니지만 음식 중간에 어렴풋이 씹혀지는 고향의 식재료는 그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소울푸드는 그런 감성을 이어가 레트로를 자극하는 감성적인 음식이자 집밥의 느낌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막내아들의 소울푸드인 김치찌개에 얽힌 일화
소울푸드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필자가 20년 전 구미에서 근무할 때가 떠오른다. 당시 태어난 막내아들은 항상 집에서 밥을 먹는 걸 좋아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집에서 태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보통의 어린아이 입맛과는 달리 된장과 집간장으로 만든 한식 요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느덧 아이가 성장하여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게 되었는데, 전학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게 되었다. 파티 장소는 강남에서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생일을 맞은 친구의 어머니가 “무엇을 먹고 싶냐?”고 질문했는데, 메뉴판을 한동안 뚫어지게 보던 아들은 잠시의 머뭇거림 없이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데 여기에 없다”고 투정을 부려 모두가 한참을 웃었던 적이 있다. 그렇다. 아들의 소울푸드는 김치찌개다. 푹 익은 신김치에 돼지고기 오겹살을 넣고 두 시간 정도 끓여 산미에 감칠맛까지 한껏 우려낸 김치찌개는 그야말로 아들을 환장하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을 한 탓인지 무의식적으로 긴장을 해소하려고 입에 침이 가득 고이는 김치찌개가 떠오른 것 같다.
나의 소울푸드는 매콤하고 투박한 콩나물 볶음
이 글을 쓰면서 ‘나의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음식과 기억은 하나이기에 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소울푸드가 하나씩 떠오른다. 그래도 그중 하나를 꼽자면 매콤하면서도 투박한 ‘콩나물볶음’이 생각난다. 다른 양념 필요 없이 국간장과 들기름만으로 맛을 낸, 마치 엄마의 잔소리와 손맛이 가득 담긴 듯한 ‘콩나물 볶음’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내가 마음에 안 들거나 화가 났을 때 고기반찬은커녕 햄 한 쪽도 아까운지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콩나물을 그냥 볶아서 투박한 대접에 밥이랑 주었는데 지금도 콩나물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별것 없는 짭조름한 간장에 매운 콩나물 맛인데 뜨거운 밥에 올려 먹으면 완전 밥도둑이 따로 없다. 행여나 맛있게 먹으면 엄마가 더 화가 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면서 먹긴 했지만, 밥 한 톨 남김 없이 먹는 것이 얼마나 미안했는지 차마 더 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이런 콩나물 볶음은 나의 기억 속에서 별미의 반찬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대학교에서 힘든 시험을 보고 입맛이 없던 나의 식욕을 불러일으킨 것도 매콤한 콩나물 볶음이었고,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나를 위로하며 소주 한 잔에 먹었던 안주도 콩나물 볶음이었던 걸 보면 나의 소울푸드는 콩나물 볶음이 맞는 것 같다.
나의 소울푸드인 콩나물 볶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아주 맵다는 것, 그리고 오동통한 콩나물로 빠르게 요리를 해야 된다는 것. 오늘 그 소울푸드를 소개한다.

콩나물 볶음
재료 통통한 콩나물 한 봉지, 들기름 3큰술, 집간장 5큰술, 고춧가루 5큰술, 마늘 취향껏, 다진 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