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스토리가 있다, 김치볶음밥
글 _ 황인철 산부인과 과장진료과목 _ 산전관리, 고위험임신, 정밀초음파
최근 화제가 되었던 흑백요리사로 우리나라에서 다시 음식 관련 영상이 열풍을 이루고 있다. 과거 음식과 관련된 열풍이 금기로만 여겨졌던 부엌에 남자를 불러들인 공로가 있다면 이번 열풍은 요리가 단순히 먹는 것에서 벗어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열풍이라고 할까? 음식이 단순히 맛있게 배고픈 배를 불리는 관념에서 벗어나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맛이며 모양이며, 만드는 방법까지 전문가의 유려한 손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중은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영상을 만들고 따라하기를 반복하는, 또 다른 음식의 놀이가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음식을 만들기 좋아하는 필자도 사실 이런 현상이 신기하고 반갑기도 하고, 때로는 나도 따라해 봐야지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욕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천을 못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언제부턴가 만들어 먹고자 하는 음식을 떠올리면 음식 속에 숨어 있는 나만의 추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음식에는 모두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사연을 떠올리며 음식을 만들 때 행복하고, 먹을 때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순수한 개똥철학이 있다.
생일날 먹는 미역국부터 시작해서 길거리에서 파는 순대, 떡볶이, 호떡 등에도 사연이 있고,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하는 김밥 한 줄에도사연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때의 음식을 먹으며 사연을 떠올리는 것이 음식을 만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때로는 혼자 웃기도 하고, 때로는 소주 한잔이 없으면 안 되는 눈물 짓게 되는 음식도 있다. 그런 음식을 먹을 때 카타르시스라도 느끼듯이 요리에 빠져드는 나만의 이런 개똥철학은 아마도 지금까지 부엌을 찾는 나의 원동력이며 이는 평생 나를 지배할 것 같다.
최근 서울 TBS에서 유튜브 촬영을 하였다. 음식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담는 내용인데 중간에 이런 음식과 스토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음식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김치볶음밥을 이야기 해볼까요? 여기 계신 분은 김치볶음밥 하면 어떤 사연이 있나요? 저는 김치볶음밥 하면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한 소개팅이 생각납니다. 어느 조용한 카페로 기억하는데 정말 내 앞에 나와 같은 나이의 여성이 앉아 있는 그 설정 하나로 가슴이 무척이나 뛰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주문하였는데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제일 위에 있는 김치볶음밥을 주문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했는데 정말 떨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김치볶음밥만 먹었습니다. 김치볶음밥이 어떤 맛이었냐구요? 제가 생각하는 김치볶음밥은 아무 생각도 안 나는 맵지도 않은데 땀을 맺히게 하는 그런 맛이네요.
순간 같이 방송을 했던 사람들도 김치볶음밥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한다. 자취방에서 먹었던 김치볶음밥이며, 결혼해서 아내에게 해주었던 김치볶음밥이며, 그리고 다들 그 맛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
스토리는 음식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의 조미료다.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재현하고자 나는 오늘도 부엌에 선다.
오늘 만드는 김치볶음밥은 아무 맛도 안 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이야기로 꽉 찬 고소한 김치볶음밥이 될 듯하다.
재료
밥 한 공기, 버터 한 스푼, 맛소금 0.5T, 김치, 달걀 1개, 스팸 두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