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리더십,
유기적인 의료시스템의
중요성을 경험하다
글 _ 김민정 외과 과장진료분야 _ 간담췌외과(담석증, 간종양, 담도질환, 췌장종양)
조금은 더딘 시간 속 ‘일 년’이라는 선물 같은 시간
2005년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쉼 없이 늘 시간에 쫓겨 생활하다가 작년 여름부터 1년이라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가족과 함께 조금은 더디게, 소중하고도 특별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듀크 대학교는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럼에 위치한 연구중심 명문 사립대학으로 미국 남부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듀크 의과 대학(Duke University of Medicine)은 미국 대학 순위에서 상위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는 미국 남부 최고의 명문 아이비리그로, 이 듀크 의과대학 소속 대학병원 외과에서 선진 연구와 수술 팀워크를 배우기 위해 연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일 년을 지냈던 이곳은 특히 더럼과 노스캐롤라이나의 주도인 랄리를 포함하는 북미 최대의 연구 단지 중 한 곳인 리서치 트라이앵글에 있는 환경으로 교육과 연구의 중심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높은 나무가 푸르고, 곳곳에서 마주치는 동물들이 어우러진 안전한 환경과 친절한 분위기의 살기 좋은 동네였습니다.
시스템의 힘 (최선의 진료와 연구성과를 위해 최고의 시스템을 추구하다)
해외 연수를 떠나기로 결정한 뒤 연수지 선정의 기준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환자관리 연구, 수술 팀워크를 함께 학습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물론 수술의 기술적인 면에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겠지만, 위의 부분은 선진국의 시스템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듀크 외과 연구실에는 그 명성에 걸맞게 미국 각 지역을 넘어 세계 각국에서 모인 팀원들로 항상 활기가 넘쳤습니다. 당시 지도를 맡아주신 Stuart Knechtle 교수님 팀에서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온 두 명의 전공의들이 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레바논에서 온 의사와 미국 각지에서 모인 연구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개성 넘치고 문화적 배경이 다른 팀원들이 모여 임상 진료 외에도 형질전환 돼지의 장기를 영장류에 이종이식 하였을 때 발생하는 면역반응의 메커니즘(mechanism)과 이 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면역억제제를 사용하였을 때 이종이식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 매주 목요일 진행되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수시로 저명한 연사들의 발표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최신 연구 동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을 느끼기도 하였는데 수술과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무엇보다도 ‘시스템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소수의 리더가 이끌어가거나 과도한 업무시간으로만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활성화 될 때 올바른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록에 있는 것은 빠짐 없이 체크하고, 각 단계별로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검증하는 과정을 원칙대로 고수하여 모든 단계를 프로토콜화 하고, 변수가 수시로 발생하는 생명을 다루는 수술 과정이지만 예외의 경우가 생길 때 마다 끊임없이 검증하고 토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포용할 줄 아는 리더의 자리
또한 리더로서 Stuart Knechtle는 많은 부분에서 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수술 전 모든 과정은 미리 철저히 상의했고 수술 당일에도 한 번 더 자세한 브리핑을 통해 모두 최선의 프로토콜을 합의하는 과정을 매번 거쳤습니다. 어느 날 수술을 함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체의 상태도 좋지 않았고 뭔가 팀원들 간에도 합이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던 수술을 마친 뒤 ‘Today’s Surgery’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수련의들과 연수자인 저를 포함하여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팀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느낌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며 이것이 이 팀의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연마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중대한 역할이 주어지는 자리에서 ‘존경받는 스승이자 팀리더로서의 역할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저 메일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다
코로나로 한동안 해외 연수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기간을 지나고 병원의 지원과 과원들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이런 뜻깊은 경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만, 한국의 상황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의료대란을 겪게 되어 본의 아니게 우려와 혼란스러운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연수 기간을 돌이켜보면 의대에 입학하고, 외과 전공의가 되어 쉬지 않고 달려왔던 터라 여유 속에서 가족과 함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외과 의사로서 미래에 대해서도 발전적인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